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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몰랐던 니콜라 테슬라 (Nikola Tesla)의 아홉가지 숨겨진 팩트

기타 (Misc)/상식

by 랑크 2023. 6.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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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인 물리학자이자 전기공학자였던 니콜라 테슬라.  인류에게 전기를 무료로 제공하기 위해 거대한 송전 탑까지 만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숨은 히어로입니다.  경쟁에 시달리고 자신의 정신장애에도 많이 시달려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한 인물입니다.   오늘은 이 천재적인 영웅에 대해 몰랐던 9가지 부분을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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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형제의 죽음이 그를 신비롭게 만들었다 - 7살에

니콜라 테슬라를 바꾼 날이 그의 형, 데인,의 죽음을 목격을 한 날입니다.  그 후로 테슬라는 주변의 공기가 살아 있는 불의 혀들로 꽉 차있는 환영을 보게 됩니다.  청년기의 테슬라는 그의 의지력으로 이 환영을 컨트롤하는 법을 배우게 되죠, 그러나 말년에는 뉴욕 맨해튼의 비둘기와 대화를 하며 밥을 주면서 생을 보내게 됩니다.


2.  테슬라는 생애에 잠시 도랑을 파면서 삶을 보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테슬라는 에디슨 (Thomas Edison)의 파리의 지사에 다니게 됩니다, 그러나 1884년에 미국으로 가서 직접 에디슨 밑에서 일을 하게 되죠.  에디슨 밑에서 본사의 엔지니어가 되면서 에디슨의 감명을 주면서 관심을 듬뿍 받게 됩니다.  5만 달러 제의를 하면서 에디슨은 테슬라에게 일을 하나 주지만 그 일을 해낸 테슬라는 에디슨에게 "농담"이었다면서 배신을 당하게 됩니다.  테슬라는 퇴사를 하지만 그의 연구의 투자가를 찾는 동안에는 도랑 파는 일을 하면서 하루에 2달러를 벌었다고 하네요.


3.  마크 트웨인 (Mark Twain)의 도움으로 테슬라는 엑스레이를 "거의" 발견했었다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마크 트웨인 (Mark Twain)과 테슬라는 1890년대에 친구사이가 되었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테크놀러지와 신기술 발명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어느 날 밤에 테슬라의 연구실을 들른 트웨인은 백열등을 이용한 사진에 포즈를 취합니다. 
 
1895년에 테슬라와 사진사 에드워드 링우드 휴잇 (Edward Ringwood Hewett)은 트웨인을 초대하여 다시 사진을 찍게되고 여기에서 사용된 기기가 크룩스 관 (Crookes tube)라고 불립니다.  테슬라가 이 네거티브를 검토하는 도중에 그는 얼룩을 발견하고 잘못 찍은 사진이라고 생각을 하죠. 
 
불과 몇주 후에 바로 독일 과학자 빌헬름 뢴트겐 (Wilhelm Röntigen)이 발견한 엑스레이가 이 크룩스 관의 금속 나사에서 생성된 것입니다.


4. 테슬라는 인류의 모든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한 무선 조종 보트를 만들었다

1898년의 스페인-미국 전쟁 중에 테슬라의 프로젝트 중의 하나가 미니 보트를 무선으로 조종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가 특허를 출원하자 미국 특허청은 말도 안 되는 기술이라고 주지를 않았죠.  그래서 에이전트를 테슬라의 맨해튼 연구소에 보내어 증명을 하게 합니다.  
 
이 데모에는 제이피 모건 (J.P. Morgan)나 윌리엄 케이 밴더빌트 (William K. Vanderbilt) 같은 다른 유명한 중요인물 들도 참관하게 됩니다.  뉴욕 포스트지에 테슬라는 그의 발명은 인간을 위험하게 하지 않고 전쟁을 할 수 있고 그러면서 전쟁을 없앨 수 있다고 말을 하죠.


5.  우주에서 시그널을 받았다는 주장이 맞았다 - 100년후에

1899년의 한 여름에 테슬라는 콜로라도 주의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연구실을 만듭니다.  이유는 고지대에서 더 멀리 전기를 보낼 수 있는 실험을 하려고였죠.  7월의 어느 날 번개 스톰을 따라가는 도중 테슬라의 장비에서 삐-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태양이나 지형적인 원인을 배제한 휴에 그는 이 시그널이 다른 행성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크리스마스날에, 미국 적십자사의 미래 100년의 과학 기술에 대한 요청이 왔을 시에 테슬라는 이렇게 썼습니다. "형제들이여! 다른 미지의 세계에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1... 2... 3...이라고 말합니다"   
 
1996년에 과학자들의 연구 논문에 테슬라의 연구를 다시 하면서 이 시그널은 목성의 달이 목성의 자기장을 지나가면서 생기는 시그널이라고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6.  유명한 건축가 스탠퍼드 화이트 (Standford White)가 테슬라의 연구소를 디자인했다

 
1901년에 테슬라는 새로운 연구를 위해 제이피 모건에게서 15만 달러를 투자받게 됩니다.   롱아일랜드 섬의 북쪽에 위치란 워든클리프 (Wardenclyffe)에 짓기로 되어 있었고 이 장소는 장거리 무선 송전의 주 센터가 되기로 되어 있었죠.  테슬라의 오랜 친구였던 스탠퍼드 화이트는 56미터의 송전탑이 있는 연구소를 디자인해주게 됩니다.  그의 꿈이자 야망이 무선 송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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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테슬라는 투자가인 제이피 모건과 불안정한 관계였다

워든클리프의 탑이 완성되기도 전에 투자금이 바닥이 나자, 테슬라는 모건에게 투자금을 더 받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거절을 당하죠.  역사가들이 모건의 거절이 테슬라의 무선 송전 기술에 대한 불신이라는 말도 하지만, 모건의 중요한 문제는 무선 기술에 대한 마켓의 추측과 싸움에 말려드는 것이었습니다.  모건의 거절 후 1903년의 7월에 테슬라는 자신의 장비를 가동을 시키게 되고 자정이 넘을 때까지 전류를 워든클리프의 탑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로부터 1년 후, 모건에게 한번 더 거절을 당한 테슬라는 모건을 이슬람 광신주의라고 몰아붙이죠.


8.  테슬라는 말년을 은둔자로 보냈다 - 한 가지만 예외하고

 
뉴욕의 상류층과 잘 알고 지냈던 테슬라였지만, 나이와 가난이 그를 더욱더 고립시켰습니다.  그는 허름한 호텔에서 살면서 사람들 대신에 비둘기와 생활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쇼맨십이 강한 발명가라서 매년 그의 생일인 7월 10일이 되면 기자회견을 가졌죠.  그가 79살이 되던 해는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폭파할 수 있는 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발진기를 선보였습니다.  그다음 해에는 장수의 비법을 알려주었습니다 - 발가락 움직이기 운동...


9.  테슬라는 한때 연체된 호텔 값을 "죽음의 빔 (death beam)"이라는 발명품으로 갚았다

 
워든클리프의 연구소는 빚청산의 일부로 워도프-아스토리아 (Waldorf-Astoria) 호텔 그룹으로 넘어갔습니다.  수십 년 후에 고보너 클린턴 (Governor Clinton) 호텔의 매니저도 테슬라의 물건을 빚 청산용으로 받게 되죠 - 테슬라의 말에 의하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입자 빔 무기가 들어 있는 목재 케이스입니다.  
 
테슬라의 "죽음의 빔 (death beam)"은 침략하는 군대를 막을 수 있어서 전쟁이 필요 없어질 거라고 했습니다.  이 케이스를 전해주면서 호텔 직원들은 절대로 열면 안 된다고 했답니다.  모두들 두려워서 창고에 넣어 두었다고 하네요.  1943년 별세후에 그 박스를 열어보니 오래된 전기 부품만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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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ource):

h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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